글 : 이광호 한국인터넷뉴스 / 발행인

 

민병식 목사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지난 일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 목사는 유년기를 어렵게 보내며 고학생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남을 도우며 살겠다는 굳은 결심을 안고 신학대학을 입학했고 신학대학에서 같은 뜻을 가진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신접살림은 개척교회를 일구것부터 시작됐다.

부부 목사는 보은 산골짜기에 조그마한 교회를 설립하고 주변에서 일군 고구마, 감자로 연명해 가며 신앙으로 이웃을 보듬어 나아갔다.

20여년간을 남모르게 땀 흘리며 사랑과 봉사하는 것이 주변에 알려지자 청주에서 잘 알려진 교회에서 부부목사를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이 교회는 청주 중앙공원에서 얼마 안 떨어진 중심가의 교회다. 바로 옆 중앙공원에서는 노숙자와 노인들이 하루 수십명에서 수백명이 윷놀이를 하거나 장기로 하루를 소일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엔 재미로 시작된 놀이가 차츰 돈을 걸고 내기 장기와 윷놀이가 일상화되면서 결국에 가서는 박포 장기로 노름이 시작되었다.

어르신들이 이처럼 많이 모여 각종 놀이를 하고 있자, 뜻있는 사회단체나 종교단체 등이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어르신들의 놀이문화가 사행심으로 변질되는 것을 목격한 민 목사는 배식하는 날에는 자원봉사자로 나서 허잡한 일을 도우며 어떻게 하면 이들이 사행심에서 벗어 날수 있을까에 골몰했다.

이들 부부목사는 노름에서 손을 뗄 수 있는 사람부터 교회로 하나 둘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파지와 빈병 등을 모아 판돈을 통장으로 만들어 주며 생활에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노인들이 돈이 몇 천원에서 몇 만원으로 불어나자 본격적으로 소매를 걷어 붙이고 나섰다.

이렇게 해서 늘어난 교인이 40~50명이 되면서 그들이 쌓아 놓은 각종 잡동사니가 교회 마당 한구석이 하치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민병식 목사의 소신있는 사회봉사로 교회가 점점 커져 일주일에 한번 정도의 점심식사를 교회에서 제공하고 뜻있는 명절날에는 떡과 떡국 등을 돌리기도 했다.

부부 목사는 길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던 걸인이나 노숙자를 교회에서 재우고 삼시세끼 뜨거운 밥을 해 먹이자 노숙자들 사이에는 ‘배 곱은 사람은 부부목사한테 가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새롭게 태어난 교인들은 '등 따시고 배 부르자' 재산 모으기에 혈안이 되면서 각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결국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민 목사는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고물상을 경영하면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 투자하고 공동 분배하는 제도를 착안해 그들의 통장과 자금을 집중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 몇 간은 자기 돈에 손대는 줄 알고 경찰에 민병식 목사를 고발했다.

“민 목사가 자기들이 번 돈을 자기가 갖고 안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경찰에서는 민 목사의 행적을 조사하고는 돈은 보관하고 있었지만 일부 경비를 제외하고는 돈이 부족한 점이 없다며 불구속 수사했다.

그러나 법원은 아무리 목사라 할지라도 교인의 재산을 관리할 권한은 없다며 법정 구속했다. 또 재판부는 교인의 동의없이 제반 경비를 사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시했다.

민 목사는 구속적부심에서 남을 위해 지금까지 헌신하며 살아왔고 교인들의 돈을 한 푼도 떼먹지 않았다며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맹세한다고 강변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불쌍한 노숙자들의 노동력을 팔은 돈을 갈취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취지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민 목사는 가슴에서 퍽! 하는 심장 멎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이렇게 인격이 말살되고 있는 현장에 내가 주인공이었다니 도저히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다.

민 목사는 재판부에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지금까지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오면서 이렇게 황당한 일은 처음 당하는 일이다.

옆에 있던 국선변호사는 말 한마디 안하고 판사의 판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민 목사는 국선변호사를 구원의 눈동자로 쳐다보았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판사의 처분만을 바라고 있자 지난 날 변호사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언젠가, 여 신도가 민 목사를 찾아와 신앙 고백을 통해 변호사의 행각에 대해 폭로한 적이 있다,

여 신도와 우 모 변호사는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한동네의 소꼽 친구사이다.

우 변호사는 항상 1등을 하는 수재로 개교 이래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우 변호사 밖에 없을 정도였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여자들에게 인기 짱이다.

우 변호사가 사범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오픈할 당시에 여 신도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여 신도는 “나를 인정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5,000만원을 선뜻 빌려주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사이가 가까워져 통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우 변호사는 2달만 쓰기로 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간다며 5,000만원을 더 요구했다. 여 신도는 난감했다. 더 이상 돈도 없지만 지난 번에 빌려준 돈도 남편 모르게 빌려줘 언제 남편이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할지? 불안해 요즘엔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여 신도가 더 이상 돈이 없다고 하자 바쁘다는 핑계로 만날수도 없고 돈 갚을 생각도 하지 않아 어쩔수 없이 목사님에게 하소연한다며 울먹였다.

이처럼 변호사의 행실이 유부녀와 통정하고 돈을 갈취하는 행각에 민 목사는 혀를 내둘렀다.

오늘 역시 관선변호사의 행동거지가 책임과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에 허탈감을 가졌다.

그리고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도 재판부에서 받아 드리지 않자 민 목사는 재판을 거부키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민 목사는 사법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현재 변호사로 있는 김 모 지검장은 한 음식점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다 여고생에게 목격돼 공연음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사직했다.

변호사을 개업한 그가 성매매 변론을 맡았다니 과연 성매매 변론을 할 자격이 있는지?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민 목사는 꼬집었다.

민 목사는 최근엔 지하철에서 여성들을 불법촬영하다 현장에서 체포된 현직판사가 다른사람의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재판업무를 수행한다는게 말이나 될법한 이야기냐고 반문했다.

특히 재판과정에서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판사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잣대가 매우 엄밀하다고 민 목사는 주장하고 지난 7월 중순 서울지하철 4호선 열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는 판사를 비난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이 신고했고 판사는 당일 오후 10시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체포됐다. 판사는 경찰 조사에서 “휴대전화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 자동으로 작동한 것 같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여성 하체 사진 3장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판사가 초범이고 피해자와 합의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 등 양형 자료를 종합해 통상의 기준대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민 목사는 이처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연계돼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사법계 전체가 '짜고 고 스톱 치는 형국'이라며 민 목사는 현실을 개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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