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다닥... 타다다다다닥... 탁!탁!탁!’
대소면 대동로 한 공방사무실에서 간결하고 선명한 쇠붙이 소리가 들려온다.
굵은 손마디에 주름진 손!
서각 예술가 엄재봉(68)씨의 손은 한눈에 봐도 투박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예리한 칼날과 망치로 그려내는 목판위의 그림은 섬세하고 부드럽다.
취미로 시작한 서각이 어느덧 40여년이 지나 이제는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는 천직이 됐다.
굴곡진 인생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서각에 대한 무한애정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엄 씨가 처음 서각을 접한 것은 20대 후반 취미활동을 하면서다.
아버지가 목수였던 것을 보면 그 능력이 대를 이어 전해진 듯하다.
직장생활을 마치고 오후 틈틈이 시간을 쪼개 습득한 서각솜씨는 1993년 고향 문경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공장을 차린 뒤 소품가구 등을 제작하며 사업을 시작했고 손재주가 뛰어난 그의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10여 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한 그는 목공예에 대한 성장가능성을 확인했고 급기야 중국 진출로 이어졌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고 결국 사업을 접고 2007년 자녀들이 있는 대소면에 내려와 작은 식당을 차리고 정착했다.
꿈과 희망을 담아 멀리 중국까지 갔지만 당시 생활에 대한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기를 극구 사양할 정도면 그에게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인홍공방! 엄 씨의 작업장 이름이다.
어질 ‘인’, 넓을 ‘홍’ 엄 씨의 호를 따서 만든 간판을 보고 있으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불자 신자인 엄 씨는 유독 달마도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가정의 불운한 기운을 없애고 행복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어 주위 분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를 했다고 한다.
부르는 게 값!
언뜻 보면 그의 작품이 매우 고가일거라 생각되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표현으로 쓰인다.
2013년 제11회 대한민국아카데미 미술전에서 ‘어머니의 손’으로 한국예총회장상 수상, 2014년 제12회 대한민국서예문인화대전에서 ‘서각병풍’이 종합대상을 수상해 명실상부 전국 최고의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1,200여 점의 작품이 전국에서 출품됐지만 서각작품으로는 역대 최초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경력만 따져보면 그의 작품은 정말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재료비만 받고 건넬 정도로 욕심이 없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저 좋다는 그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면 먼저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열심히 생활해 가정을 일구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각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앞으로 작품에 더욱 매진할 계획입니다. 비록 장소는 협소하지만 교육생도 받아 기술을 전수하고 강의도 하고 싶습니다."
40년 이어온 장인의 꿈이 왠지 소박해 보이지만 그는 서각을 통해 세상의 모든 잡념을 잊을 수 있었고 그런 소소한 행복이 또 다른 이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나누는 봉사로 빛을 발하고 있다. / 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