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림성 도문시 두만강 광장에서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연변주민정부, 길림성관광국, 길림성 문화청에서 공동주최하고 도문시 인민정부, 연변주 관광국, 연변주 문화국, 연변주 교육국에서 공동으로 협찬해 열렸다


이번 축제 공연에는 청주농악, 진천농요 보존회, 청주아리랑보존회 강옥선회장, 이수복, 박영숙, 이영미,박종화 씨가 출연해 '청주아리랑'을 열창했다.

중국 길림성 도문시 량수진의 두만강변 끝자락 정암촌에는 한국인 40가구에 80여명이 살고 있다. 1970년대 한국의 시골집을 옮겨놓은 듯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 1938년초.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는 일제의 꾐에 빠져 충청북도 청주군, 옥천군, 보은군 사람 180여 호가 만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곳은 척박한 불모지 중국 길림성 도문시 량수진의 정암촌 마을, 배불리 먹을 양식은 고사하고 끼니마저 걱정해야하는 곳이었다.


척박한 땅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자신의 심정과 한을 담아 부르게 된 노래 '청주 아리랑'이다.


지난 8일 청주아리랑보존회(회장 강옥선), 청주농악보존회, 진천용몽리농요보존회에서 활동을 하는 예술가 23명이 정암촌으로 향했다. 청주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 북한쪽으로는 두만강 건너편에 남양시가 있고, 멀리 태조 이성계가 살았다는 왕재산이 보인다.


“니하오(안녕 하세요)"


마을로 들어서자 주민들은 서툴지만 정겨운 한국말로 가까운 친척을 반기듯 일행을 맞았다. 초가집과 울타리, 그리고 인심좋은 사람들까지 어린시절 고향에 찾아온 듯한 기분이다.


주민들은 한동안 이주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마을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올해 84세의 서강숙 할머니. 충주시 엄정면에 살던 9살 꼬마는 두 언니와 함께 어머니 아버지 손을 붙잡고 정암촌에 건너왔다고 한다.


배부르게 생활할 줄 알았던 만주땅. 하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땅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67세의 나이에 혁명운동 투쟁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를 따라 독립운동을 했던 서강숙 할머니는 해방이후 군인으로 살다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고 한다.


고향이 그립다는 노모는 주름진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올해로 4번째 열리는 중국두만강문화관광축제, 정암촌 주민들은 조선인의 정체성을 잃지 말자는 의지의 표상으로 청주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청주아리랑은 1938년 중국 길림성 정암촌으로 이주한 주민들이 힘들 때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불렀던 고통과 한이 서린 노래다.


축제 현장에 함께 한 정암촌사람들은 약 2만여명. 두만강 너머에서 울러 퍼지는 청주 아리랑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구성진 노랫가락에 고향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고, 가슴 속 시린 한을 담아 나오는 노랫말은 고달픈 삶에 위안이었을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게...“


씨에 씨에 (고맙습니다) / 최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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