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 당선자가 충북권 최초의 선출직 최고위원으로 당선되면서 '중부권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2년전 정우택 전 지사가 쓸쓸히 도청 직원의 손을 꼬옥잡으며 아쉬움을 뒤로 한채 도청 문을 나설때 다시는 그를 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매몰찬 정치 현실에 정 전 지사는 슬픔을 가슴 한곳에 쓸어둔 채 수양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재기를 충전해 왔다.


그후 2년뒤 '상당대첩'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새누리당 최고위원에 오르면서 그가 추구하는 '중부권 시대'의 막을 활짝 열었다. 고전분투 끝에 찾아온 최고위원직은 정우택에겐 양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그가 펼치는 여의도 무대에서의 정치적 철학은 바로 대선 경선문제로 이어졌고 '오픈프라이머리'와 함께 종북주사파 국회입성 금지 등 굵직굵직한 정치현안을 거침없이 소화해 냈다.


'중부권 역할론'을 역설한 정 최고위원이 8년만에 여의도 무대에 복귀한 날부터 정치권 현안에 거침없이 펼치는 그의 소신은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사실상 그는 4.11 총선에서 겪은 고초를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수 있다. 상대는 3선의 야당 거물이며 현역 국회부의장인 홍재형 의원, 경력과 정치적 역량을 풍부히 가진 인물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선거 막바지에 불거진 '성상납'과 '논문표절'은 앞서 가던 여론이 곤두박질치면서 당락이 한치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리 여유있는 표차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러나 정 최고위원의 정치역경 역시, 만만치 않다. 총선과 지방선거의 당락을 반복하며 번민과 수양으로 내공을 다지며 '오뚜기' 인생을 살아왔다. 그는 지난 1992년 14대 국회의원선거를 진천 음성지역에서 출마해 낙선하면서 첫 고배를 마셨다.


이어 96년 15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고 연이어 재선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 3선 문턱에서 무릎을 꿇고 14대 총선에 이어 2번째 쓴맛을 본다.


그는 이듬해인 2005년, 자민련에서 새누리당(한나라당)으로 당적를 바꾸고 민선4기 충북지사에 당선되고,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 곧 앞서고 있었던터라 당연히 당선될 것으로 믿었으나 결과는 낙선이었다.


이때 그가 받은 고통은 그 어느때보다 컸을리라 예상된다. 수많은 번민과 역경을 통해 절치부심, 여의도 복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의 19대 총선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마지노선이다. 그는 지역구를 중부4군에서 충북 정치1번지인 청주 상당으로 옮겨 마지막 승부를 정치 거물인 홍재형 국회부의장과 겨눴다. '상당대첩'이라 일컬어지는 대혈투에서 어렵사리 금배지를 거머쥐면서 그는 15대,16대에 이어 3선에 오르게 된다.


그는 그칠줄 모르고 "민심이 당심되는 새누리당을 만들겠다"며 최고위원 도전에 성공하면서 여의도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제 그는 중앙 정치무대에서 비중있는 정치인으로 충청권과 강원도를 아우르는 사실상 중부권 맹주로서 그의 역활을 기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충북권에서도 그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우택 최고위원과 이시종 지사는 역활이 바꿔진 셈이다. 지난 2년전만 해도 정우택 최고위원은 민선4기 충북지사였고 민선5기 이시종 지사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각기 당이 달라 각자 가는길은 다르겠지만 충북 발전을 위해선 이시종 지사는 행정으로 정우택 최고위원은 정치로 서로 손을 잡고 충북발전에 견인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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