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남관우(54 공사30기)교수는 후배 조종사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 진정한 군인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조종간을 잡는 후배 학생 조종사들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비행교육에 임한 자랑스러운 선배 조종사였다.


故 남 교수가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하고 조종사가 된 것, 그리고 비행입문과정의 비행교수가 된 것은 남 교수의 아버지이자 ’72년부터 ’86년까지 초등비행교육과정(현재의 비행입문과정)의 비행교수로 재직했던 남상구 옹(조종간부 5기, 80세, 예비역 대령)의 영향이 크다.


남 교수가 초등비행교육과정을 위해 처음 212대대에 입과할 때에도 아버지 남상구 교수는 212대대에 있었다. 당시 비행훈련을 받은 조종사들은 이미 장군과 대령이 됐지만, 아직도 가장 존경받던 비행교수 중 한 분이던 남상구 옹을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남 교수는 전투기 조종사 생활을 하면서도 유난히 교관 생활을 많이 했다. 대위 시절 제3훈련비행단에서 3년여를 고등비행 교관으로 근무했으며, 탑건 스쿨이라 불리는 제29전술개발비행전대에서도 3년 가량을 교관으로 근무했다.


최고의 비행기량을 인정받던 남 교수였기에 후배 조종사 양성에 있어서도 늘 최고였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더구나 비행교수로서 존경과 신망을 받던 아버지 남상구 옹을 기억하는 선·후배 조종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 더욱 노력하고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


대령 만기 전역이 4년여 남긴 2009년 9월, 아버지처럼 비행교수가 되기 위해 먼저 전역 신청을 했고, 같은 해 10월, 아버지가 10년 넘게 후진 양성에 힘쓴 212대대의 비행교수가 되었다.


엄격함 속의 인자함으로 학생 조종사들이 유난히 따랐던 故 남 교수는, 밤늦게까지 비행연구에 몰두하는 후배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다과를 건네고 주말에도 맡은 학생 조종사들에게 전화하여 안부를 묻는 등 조종사의 길을 걷는 후배들을 남달리 아꼈다. 재평가를 받게 된 학생 조종사에게는 ‘반드시 통과할 수 있으니 힘 내’라는 문자메시지를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기도 했다.


공군사관학교 동기생이자, 전투기 조종사 생활과 212대대 교수 생활을 함께 해오고 있는 김진영 교수(52세)는 “남 교수는 누구보다도 비행을 좋아했고, 비행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다”며, “하늘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주었는데 그 중 제일이 조종사가 될 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전했다.


대를 이어 비행교수를 역임할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후배 조종사 양성에 최선을 다했던 故 남 교수. 비행교수의 길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행복하게 생각했던 그가 그토록 존경하고 본받아왔던 아버지보다 먼저 순직했다는 사실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 이세철 기자

저작권자 © 한국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