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주사람은 기가 죽어있다. 뭔가 잘 된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 불황인데다 집값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올라가는 아파트를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포화상태인데 앞으로 분양할 물량도 엄청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든다.


빚을 내서 겨우 장만한 집인데 값이 오르기는커녕 하루에 몇 백만 원씩 까먹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잠도 안 온다. 몇 년 전까지 멀쩡하던 동네가 재개발 사업이 진척되지 않음으로서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 사실도 서민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실제로 청주산단을 끼고 있는 복대동은 청주에서 잘 나가던 동네였다. 요즘 그곳을 가보면 전쟁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 유령이 나타날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면 청주시장은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대책을 찾아 동분서주해야 정상이다. 청주시청에선 청사 신축타령만 들려오고, 충북도는 뜬금없이 세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겠다고 수선을 떨었다.


일의 경중과 완급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신문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를 발견했다.


120조원이라는 숫자가 눈을 끈 것이다. 잘하면 청주가 그 엄청난 돈을 유치할 수도 있을 것이란 가능성 때문이다. 만약 청주에 120조원을 쏟아 붙는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남아도는 아파트도 다 팔릴 것이고, 주택경기가 침체되어 진척되지 못하는 도시 재개발 사업도 속도를 낼 것이다. 문제는 120조원이라는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게 아니라 점이다.


죽기 살기로 경쟁해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문제다. 경기도 용인?이천과 경쟁해서 이겨야만 유치할 수 있다.


얼마 전 산업통상부는 향후 10년간 120조원을 투자해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는 단연 우리 지역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청주와 이천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맨 먼저 시동을 걸고 나선 곳은 청주였다.


지난해 12월20일 청주시 의회는 "정부가 수도권에 반도체 상생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것은 균형 발전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는 망국병인 수도권 과밀화와 국토 불균형을 가속화해 지방소멸을 앞당길 것"이라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청주가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용인시 의회도 성명을 냈다. "용인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있는데다 반도체 전문인력, 도시기반시설, 교통망 같은 인프라도 뛰어나다"고 자랑하며 "각종 인센티브, 인허가 간소화, 기반시설 제공 등을 해주겠다"고 유혹했다.


청주와 용인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에 이천도 발끈하고 나섰다.


이천시 의회는 지난해 12월25일 "SK하이닉스 본사 소재지인 이천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특히 하이닉스는 현대전자 때부터 36년을 이천에서 성장했고, 법정관리 같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시민이 함께 투쟁하면서 지켜온 시민기업"이라고 연고권을 주장하는 성명을 냈다.


특히 이천시 의회는 "정부는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수도권 정비계획법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할 뿐만 아니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특별법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문제는 SK하이닉스 관계자의 답변이다. "아직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각계 여론을 종합해 중장기 투자계획을 수립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직 가변성이 있다는 뜻이다. 3개 지자체가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충북의 유일한 장점은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소멸을 부추기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부각해야만 승산이 있을 텐데 그럴 만한 힘이 없다.


12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뜻이니 정부 핵심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력도 필요하다. 아무리 정부가 지원해 준다고 해도 하이닉스가 호응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인물이 없으면 결속력이라도 있어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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