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필사적으로 북핵을 제거하려고 하는 걸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인류 역사는 신무기를 가진 자가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이 말은 신무기를 갖지 못한 자는 굴종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럼 굴종은 어떤 걸까? 가장 좋아하는 것은 빼앗기고,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5천년 역사에서 가장 굴욕적인 순간을 삼전도의 항복이라고 말한다. 인조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33번 절하면서 항복했다.


왜 조선은 청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을까? 그것도 신무기를 가진 청의 적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이 조선을 침략할 때 선봉에 세운 것은 기마부대였다. 날 센 기마병을 앞세운 공격에 왕은 강화도로 피할 새도 없었다.


허겁지겁 달려간 게 남한산성이었다. 남한산성에서 항전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때 그것마저 꺾어버린 것도 신무기였다. 성을 향해 밤낮 없이 쏴대는 대포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조선을 정복한 청은 우리가 가장 아끼는 것들만 골라서 빼앗아 갔다. 그게 바로 화냥년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만 골라서 잡아갔다, 사실 이런 국치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불과 44년 전에 임진왜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호란이 처참했다고 해도 왜란처럼 잔인하지는 안했다. 조선 사람의 귀를 잘라다가 무덤을 만들 정도였다. 임진왜란 때도 항전 의지는 충분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신무기 때문이었다. 칼과 창으로 맞서는 조선군에게 왜군의 조총은 핵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일본을 왜놈이라고 얕보며 대비하지 않았던 결과가 삼전도의 치욕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문제는 똑같은 수모를 반복해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란을 겪고도 일본에 합병당하고 말았으니까. 단군 이래 수없이 많은 외침을 당했지만 일본에 합병된 것처럼 나라가 송두리째 없어진 적은 없었다.


우리가 처참한 역사라고 말하기조차 꺼리는 삼전도 치욕보다 처참했다. 왕비가 시해당하는 것을 보고 공포를 느낀 왕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할 정도였다. 그때도 우리의 투지는 불탔다.


그러나 전쟁이 투지만 갖고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일본을 본떠서 만든 조총으로 맞서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이미 군함을 보유할 정도로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강국이었다. 새로운 문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런 무기를 갖기 위해서 몸부림쳤어야 했다. 원숭이도 사람 흉내를 내는데 우린 쇄국으로 문을 닫아걸고 집안 씨움만 했다, 6,25때 우리를 무참히 유린한 것도 바로 탱크라는 신무기였다.


소총으로 저항하는 국군을 박살낸 탱크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신무기였다. 그게 바로 전투기다. 아직도 B19란 비행기를 기억하는 노인이 많다. 지금도 우린 신무기 위협에 시달리고 있디.


북한이 핵을 갖기 전까지는 남북경쟁이 우리의 승리로 끝나는 것으로 알았다. 북한이 말을 듣지 않으면 돈 몇 푼 쥐어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북한이 핵으로 우릴 위협하고 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해도 전쟁에서 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야구로 치면 9회말에 역전 홈런을 맞은 격이다. 북한 아나운서가 불바다 운운할 때 설마했다, 그게 겁주는 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요즘 입증되고 있다.


우리보다 일본이나 미국이 더 겁을 먹고 있다. 미국이 하와이에서 민방공훈련을 하고, 일본이 툭하면 안보회의를 소집하며 요란을 떠는 것을 보면서 위기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우린 두 가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독자적으로 핵을 개발해서 핵으로 북을 제압하는 것이 그 하나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 굴종하는 수밖에 없다. 삼전도 치욕이나 귀무덤 역사는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


혹시 한미동맹에 의지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때도 약소국의 굴종은 각오해야만 한다. 핵 위협은 북한뿐만이 아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대만이 다 비슷하다. 단지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핵을 제압할 신무기를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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