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수사권 조정안이 발표되었다. 그런데 그 발표형식이 특이했다. 국무총리가 배경과 필요성을 담화문 형식으로 발표하고, 법무부 장관과 행자부 장관이 호응하는 형식이었다. 이것만으로도 특이한데 조국 민정수석이 기자들에게 자세한 설명까지 했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검?경이 합의했으니 정치권은 입법절차만 밞으라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서명식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 먼저 경찰은 지금도 막강한 권력기관이라는 사실이다.


경찰은 모든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조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에 공감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혼탁하다는 뜻이다.


흙탕물이 도도히 흐르는 강을 건너라고 하면서 옷을 흙탕물에 적시면 처벌한다는 것처럼 이율배반적이다. 안 걸리면 운이 좋은 것이고, 걸리면 운이 나쁜 것뿐이다. 이런 사회에서 모든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겁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수사권만으로도 막강한데 정보 보안 교통 등 치안권까지 갖고 있다. 이렇게 막강한 경찰도 맥을 못 추는 기관이 있다. 그게 바로 검찰과 중정(옛 국정원)이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근거해서 수사지휘를 하는 것이니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중정은 법에 규정된 안보 업무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정권안보를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이런 현상이 박정희부터 노태우까지 30여 년간 지속되었다. 이제 세상은 변했다.


요즘 국정원은 경찰을 견제할 수 없다. 너무 무력화한 나머지 정보?수사력을 집중해야할 안보 업무까지도 기획?조정능력을 상실했다. 아직도 검찰은 경찰을 지휘하는 상전으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일선 경찰이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많이 변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검찰의 종(從)이냐는 자조적인 말을 했고, 검찰 보기가 싫어서 수사형사를 기피한다는 말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바탕 숨을 죽여 놓은 데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검찰개혁을 부르짖더니 취임 일 년을 넘기면서 입법까지 마무리할 기세다. 6,13 지방선거에서 완승함으로써 사기가 충천한데다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압승함으로써 입법능력도 강화되었지만 아직도 완벽하지는 않다,


정부의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우선은 현재 가동 중인 사법개혁특별위를 통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개위는 기한이 이달 말로 끝나는데 기간을 연장할 방법이 마땅찮다.


그렇다면 법사위를 통과해야 하는데 위원장이 권성동 한국당 의원이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문제로 체포동의안이 게류 중인 상태다. 권성동 의원이 협조할 가능성이 적은데다 법사위원의 대부분이 검찰 출신이거나 검찰에 우호적인 성향이다.


길은 한 가지 더 있다.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회부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신속처리 안건 제도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속 상임위에서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한국당과 바른 미래당이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입법능력도 없으면서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해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수사기관은 잿밥에 눈이 어두워 염불에 전념할 수 없을 게 뻔하다. 검?경 역할은 목수와 인부에 비유할 수 있다.


목수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인부로부터 건축자재를 공급받아야 한다. 두 사람이 협력해도 좋은 집을 짓기 어려운데 싸움까지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렇게 시간만 끄는 것도 문제다.


쇠뿔은 단김에 빼란 말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경이 적폐수사에 몰두하느라 민생치안엔 구멍이 많다는 원성이 높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게 해야만 고칠 수 있는 병폐다.


국민을 위해 수사권을 바르게 행사하도록 하는 개혁이 아니라 권력을 안배하는데 급급한 것도 문제다. 검?경 문제의 핵심은 정치적인 독립성을 보장하지 못하는데 있다. 이것은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의 임명을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서 비롯된다.


이런 사항도 수사권 조정에 포함해야만 야당도 발 벗고 나설 게 아닌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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