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서 이명박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발상을 전환한 용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하천의 변천사는 대략 서너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하천은 지저분한 곳이라는 인식이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하천을 시멘트로 복개하면 더러운 곳을 감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로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 혁신적인 효과 때문에 전국각지로 확산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멘트의 삭막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싹텄을 것이다. 시멘트를 걷어내고 자연상태로 복원하고 싶었지만 실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해낸 게 바로 이명박이었다.


결국 청계천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청계천을 걷다가 보면 무심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청계천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의 개발가치가 높다는 생각에서다.


청주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동서 양축을 포용할 수 있는 중심에 무심천이 흐르고 있다. 그 땅값을 시가로 환산한다면 줄잡아도 평당 수백만 원은 충분할 것이다. 그 넓은 땅값을 돈으로 계산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일 것이다.


만약 그런 엄청난 재산을 개인이 갖고 있다면 저렇게 방치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청계천과 비교해보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우리의 무심천도 전국의 여느 하천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지저분한 무심천을 콘크리트로 포장해서 길을 내고 주차장을 만들면서 흡족했을 것이다. 도심의 교통난과 주차난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꿈도 부풀었을 것이다. 그게 어제 같은데 지금은 다시 자연상태로 복원하자는 소리가 높다.


문제는 아무리 자연형으로 복원한다고 해도 쾌적한 시민공원으로 거듭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소음이다. 무심천 제방 양쪽에 도로가 있고, 그 도로로부터 나오는 자동차 소음은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아무리 돈을 들여 공원을 만들어도 사람이 꼬이지 않는 것은 그 소음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로를 없앨 수도 없다. 환경단체가 그렇게 아우성을 치는데도 여태 하상도로를 없애지 못한 이유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바로 발상의 전환이다. 그게 바로 무심천에 지하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심천은 쾌적한 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오지 말라고 해도 사람이 몰려들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런 공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모든 도로를 터널화해 직선으로 뚫는 토목기술을 생각하면 무심천 지하에 도로를 만드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지하도로 공사를 하면서 얻는 골재만 팔아도 공사비의 상당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는 전문가도 많다.


무심천 지하에 청주의 남북을 관통하는 10차선 정도의 도로를 건설한다면 청주의 교통, 주차, 공원 문제 등은 거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환상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청계천보다 강한 영향을 전국에 파급할 게 분명하다.


전국 각지의 도심 하천에 지하도로가 생기는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주인공은 금방 유명해질지도 모른다. 만약 이 일을 청주시장이 했다면 충북도지사쯤은 떼놓은 당상일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질주한다면 대권까지 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이 가능한데도 아무도 공약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왜 그런 걸까? 발상을 전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험을 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위험한 장사가 돈이 많이 남는다는 말이 있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는 자만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무심천을 걸으면 “금강 물을 무심천으로 돌리겠습니다.” 라고 외치던 60년대 정태성이란 국회의원이 떠오른다.


그 말을 들으며 유유히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면 무심천에 지하도로를 건설하겠다고 외치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런 변화를 갈구하는 꿈에 취한 때문일까? 아니면 정치 철이 다가오기 때문일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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