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랑 여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게 겁난다. 얼마나 많은 언론이 자신의 문제를 대서특필했던가. 남편을 버리고 재혼한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재혼한 남자까지 속이고 연인을 만나러 중국에 왔다고 매도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알고, 이런 비난쯤은 기꺼이 감수할 각오를 하고 비행기를 탔다. 정작 서운한 건 애인이라는 작자다. 마땅히 극진한 대우를 했어야 했다. 오직 이 남자만을 믿고 중국까지 왔는데 환대는 고사하고 마중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대신 내보긴 했지만 매너가 형편없는 작자였다. 워낙 바쁜 남자이니 그것도 이해한다고 치자. 3박4일 동안 꿈결 같은 신혼여행이 되도록 철저히 준비했어야 했다. 달콤한 여행을 다니며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어도 남편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혼자서 밥을 먹는 시간이 태반일 정도로 무심했다. 이것도 늘 바쁜 사람이니 이해한다고 치자. 문제는 자신이 데리고 온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것이다. 이것은 날 폭행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대우를 받으려고 남편을 속이고 중국까지 왔단 말인가. 한 여사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가 듣기 싫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들로부터 멸시당할 생각을 하면 겁이 난다.


한사랑 여사는 두 눈을 감는다. 돌이켜 보면 다 팔자소관이다. 누구에게 빠지지 않는 미모에 제법 재산도 있고 생활능력까지 갖췄다. 어쩌다가 보니 남편을 버리고 미국 남자와 재혼을 했고, 새 남편의 의심을 사면서까지 애인을 만나러 중국에 온 것이다.


부모님이 짝 지어 주신 첫 남편은 돈은 없어도 정이 많은 남자였다. 애까지 낳고 잘 살고 있는데 느닷없이 미국 남자가 나타나 꼬이기 시작했다. 첫 남편은 술을 좋아하는 데다 가난뱅이였다.


미국 남자는 재산도 많았지만 신사였다. 여자를 위해주는 신사도를 보면서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바람이 났더라도 첫 남편이 마음을 잡고 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미국 놈과 눈이 맞은 여자를 얼른 버리라고 강요한 사람이 바로 중국 남자였다.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불행은 미국 서방이 바쁘다는 핑계로 툭하면 출장을 가는데서 비롯됐다. 게다가 첫 남편은 이혼한 후에도 이웃에 살았다. 툭하면 찾아 와서 주정하거나 주먹을 휘둘렀다,


이때마다 미국 남편에게 연락했지만 워낙 거리가 멀어서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상상했다. 가까이 사는 중국 남자와 친하면 금방 달려와서 말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더구나 중국 남자는 북 서방과 친한 사이고, 그 남자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는 처지다.


중국 남자와 친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런 낌새를 눈치 챈 미국 서방이 중국 애인과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 그렇다면 옛 서방이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총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 총으로 한 방 쏘기만 하면 전 서방은 꼼짝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중국 애인이 그걸 싫어 한다는 것이다. 그 총으로 북한 서방을 쏠 수도 있지만 자신을 쏠 수도 있다고 오해한 것이다.


자신과 사귀려면 미국 남편과의 관계부터 청산하라고 요구했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간단하겠는가.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 남자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한 여사는 두 눈을 감는다. 세 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다시 결혼해 주기만 하면 절대로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애원한다. 키다리 미국 남편도 말한다. 중국 애인과 관계만 끊으면 당신을 보호해주겠다고.


뚱뚱이 중국 애인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모습이다. 키다리와의 관계를 청산하라고 했더니 양다리 걸치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녀의 귀에 함성이 들린다.


“저년을 돌로 쳐라!”


함성은 점점 커지는데 비행기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 함성 속에 남편의 성난 목소리도 섞여있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북 남편 모습이 보인다, 끝나지 않는 인연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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