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시종 충북지사가 ‘영충호 시대’란 말을 처음 썼을 때 그의 언어구사능력에 감탄한 사람이 많았다. 왜 이 말에 공감한 사람이 많았을까? 충청도 사람이 그만큼 소외감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한 이후 영남권 개발에 치중한 결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호남은 이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영남의 주도권에 반기라도 들 수 있었다. 덕분에 영호남이 사실상 국정을 주도할 수 있었다.


충청권은 비판도 할 수 없었으니 눈치만 살피며 유리한 쪽에 붙으려는 심리만 강했다. 언제 우리도 국정을 주도할 수 있는 주체로 부상할 수 있느냐는 욕망이 잠재돼 있을 수밖에 없었다.


충청권 인구가 호남을 추월했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놀랐다. 문제는 과연 영충호 시대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느냐는 점이다. 2018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아직도 영호남 시대이고, 호남은 여전히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적의원이 298명인 국회에서 불과 39명으로 121명의 민주당을 가지고 놀면서 116명의 한국당을 고립시켜버렸다. 대체 그 비결은 무엇일까? 결속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이번 예산국회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개헌을 공조하면서 국민의당에 불리한 지역 단체장이 겸하는 체육회장 문제도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소문이다.


지방선거의 승세를 몰아 총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도록 선거구도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국민의당 정국주도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가늠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게 그럼 우린 무엇이냐는 답답함이다,


호남보다 인구가 많고, 세종시라는 행정도시까지 갖고 있는 충청권은 호남에 비해 이룬 것이 너무 적다. 이시종 충북지사가 정치생명을 걸고 반영하려고 했던 중부고속도로 확장비는 겨우 8억 원만 편성됐을 뿐이다.


호남은 민주당과의 거래로 1조 원이나 드는 KTX 무안공항 경유를 성취했지만 대전은 서대전 경유를 성공하지 못했다. 어째서 이렇게 불평등한 대우를 받은 것일까? 한마디로 결속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들자는 목표가 있지만 이 말은 세종시에서만 펄럭이는 깃발에 불과하다. 대전 청주 어디를 가 봐도 개헌으로 행정수도를 완성하자는 말은 들을 수 없다. 세종시가 행정수도가 되어봤자 얻는 게 없다는 상실감 때문이다.


세종시가 커질수록 KTX 세종역 설치는 기정사실화할 것이고 전용공항 문제도 불거질 것이라고 걱정해서다. 충북이 아무리 청주공항 모기지 항공사 면허를 외쳐도 대전 충남 세종시는 들러리만 설뿐 사생결단을 낼 결기는 보이지 않는다.


충청권 지자체들이 각자도생에 빠졌다면 충북이라도 일치단결해야만 영호남이 주도하는 정국에서 들러리라도 설 수 있다. 여야의 협력은 고사하고,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자기 살기에 바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시종 지사가 한참 예산국회에 열중하고 있을 때 오제세 의원은 이시종 지사의 3선 불가론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기 선거분위기에 불을 붙이는 기폭제였다.


여당이 이렇다면 여야 관계는 굳이 따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예산국회를 주도한 정우택 대표와 김동연 부총리 등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다 결속력 때문이라는 여론이다. 호남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그 비결을 배우려고 노력해야만 들러리라도 설 수 있다.


세종시 문제도 마찬가지다. 개헌으로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완성하자는 외침이 전국에 물결치기 위해서는 서울-세종고속도로 예산 7조 원을 따냈다고 기뻐할 게 아니라 중부고속도로 확장비를 확보하지 못한 충북 입장도 헤아릴 줄 알아야한다.


충청권 원로와 단체장 등이 수시로 만나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상생전략회의 같은 기구가 절실해 보이는 이유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진부해 보여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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