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광호 한국인터넷뉴스 / 발행인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836번 7호실로 들어가세요.”

이대한이 면회실로 들어서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정 교수, 오래간만이네... 이런 곳에 뭐 하러 왔어”

이대한은 짐작하지 못한 친구 방문에 흠칫 놀라며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웃음으로 반겼다.

그는 두꺼운 유리 벽 사이로 나를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글썽거리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소리없이 펑펑 울고 있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며 말을 겨우 잇는다,

"오늘도... 널 쳐다볼 자신이 없어... 그냥... 돌아가려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네가... 어떻게... 이런 곳에...?”

"죄수복을... 입은... 너를... 쳐다 볼... 자신이 없다"며 울먹이는 그의 말에 이대한도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유리 벽 사이로 이마와 손을 맞대고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울었다.

나를 쳐다볼 수가 없어 몇 차례씩 면회를 왔었지만,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는 그 친구는 이대한과는 중 고등학교 동창으로 막역한 사이다.

학창시절 서로 꿈도 많아 밤새워 가며 장래를 토론하던 아주 모범생이었던 정진구 학생은 지금, 공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대한과 정 교수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어린 학창시절부터 젊은 시절에 늘 가까이서 서로를 아끼던 죽마고우다.

정진구 교수는 젊은 시절, 군 복무를 청주 공군부대에서 복무한 적이 있다, 소위를 달고 처음 군 생활을 시작한 곳은 대구였지만 제대 말년에는 고향인 청주에서 복무했다.

정 교수가 청주 공군부대로 전입해 오던 해, 부대는 9홀짜리 골프장을 개장했다. 물론 목적은 부대원들의 체력 단련장으로 개장했지만, 부대원들의 운동하는 시간 외에는 일반인도 이용이 가능했다.

그때만 해도 청주에는 마땅한 골프장이 없어 필드를 나가려면 유성 CC나 도고 CC를 이용하여야만 하던 시절이다.

특히 부대의 골프연습장은 드라이브 거리가 200m로, 다른 연습장보다 연습 거리가 길어 우드를 연습하기엔 매우 적당해 골프인들이 줄을 이었다.

또 공군부대 위치가 청주 근교에 자리 잡고 있어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그린피’도 일반 골프장의 반값으로 캐디없이 라운딩을 하게 되면 아주 값싼 골프로 하루 운동량을 해소할 수 있어 이용객들이 기하급수로 늘고 있었다.

그러나 공군부대는 군사시설로 특히 대한민국 공군 주력기였던 팬텀 15기를 비롯해 각종 비행대대가 편재된 군사 주요시설이다. 급기야 골프장으로 인해 방문객들이 늘어 보안상 문제가 있자 출입통제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공군부대는 골프장을 출입하는 이용객들에게 신분 검사와 함께 출입증을 발부하기에 이르렀다.

정진구 교수는 그 당시 공군 중령으로 정보과장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신분 검사와 출입증 관리를 정보과에서 담당하고 있었는데 골프장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정진구 과장의 세도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 당시 공군부대에 부킹을 하려면 인근 골프장보다 더 어려워 2~3주씩 기다려야 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대한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정진구 과장 빽(?)으로 공군부대에서 골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주말인 경우, 부킹을 부탁하는 주변 분들 때문에 골머리를 섞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때 공군부대를 출입하려면 이대한을 통해야 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어쩔 수 없이 부탁하는 사람들의 출입증을 만들어 주느라 내 일도 제대로 못해 가끔 밤을 세워야 했다.

종종 연예인들이 이곳에 운동을 하러 왔는데 당시 쟁쟁한 인기 탤런트 K 씨와 인기가수 J 양과 함께 라운딩할 기회가 있었다. 연예계에서는 핸디가 싱글인 K 씨를 당해 낼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문제는 공군부대 골프장은 페어가 좁고 개장한 지가 얼마 안 돼, 잔디가 고르지 못해 사실상 선수들에게는 마땅치 않은 곳이다. K 씨가 9홀을 돌고 나더니 9홀을 더 원해 그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초반 9홀의 K 씨 스코어는 45, 그라운드 컨디션이 아무리 나쁘다고 하지만 싱글치는 사람이 보기 플레이를 했으니 자존심이 몹시 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스코어에 상관없이 드라이브 하나, 아연 샷 하나를 자기 특유의 체질에 맞춰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파’가 나올 땐, 양손을 벌려 하늘에 감사한다. ‘버디’라도 나오게 되면 잔디에 벌렁 누워 타령 한 곡조를 신나게 뽑는다.

라운딩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넋이 빠져 다음 홀에서 ‘오비’라도 내게 되면 그의 특유인 손재주로 박자 소리를 내며 어깨를 덩실덩실하며 춤을 춘다.

이대한은 그의 밉지 않은 행동에 맞장구를 치며 함께 어우러지자, 이날 골프는 골프가 아니고 굿판이 되고 말았다. 이대한은 이날 K 씨에게 한 수를 배우고 있었다. 그는 실수를 인정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곤 그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후반 9홀의 스코어는 34, 언더를 치는 저력에 동반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대한은 K 씨의 천부적인 ‘끼’는 정상을 오르는데 밑거름이 되었고 정상에서의 겸손한 태도는 오늘날까지 정상에 우뚝 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정 과장은 나에게 부대장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부대장은 공군 준장으로 정복 자세로 나를 맞이했다. 그는 공군 주력기인 팬텀 15기에 대한 위력을 소개하고 대한민국 공군이 북한보다 한발짝 앞서 막강한 화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파했다.

이날 부대장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아닌 비밀 하나를 살짝 공개했는데, 팬텀 15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의 머플러가 ‘빨간 마후라’라고 말하고 몇 년 전인가 신영균 주연의 영화, ‘빨간 마후라’가 대박을 쳤다고 설명했다.

이대한은 부대장과 함께 팬텀 15기를 직접보고 이것저것을 확인하고는 며칠 뒤 우리 공군의 화력이 북한보다 한발 앞서고 있다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제대 말년이었던 정진구 정보과장은 제대하고는 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유학을 마치고는 공주사범대학교(지금은 공주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그렇게 그가 청주를 떠난 이후에는 서로가 바빠서 만나는 날도 뜸해졌다.

서로들 술을 한 잔씩 할 줄 알아야, 술친구로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둘 다 술은 입에도 못 대니, 만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몇 해 전인가 서양화가인 정 교수 부인이 공주문화원에서 개인전을 전시한다고 해, 잠시 들러 정 교수 부부를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오늘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 나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위로하러 온 놈이 위로 받을 놈의 위로를 받게 된 것이다.

정 교수는 안정을 찾았는지 자기가 쓴 책이라며 책 한 권을 나에게 내민다, 유리 벽 사이로 그가 펼쳐 든 책장 첫머리엔 “누가 뭐래도 세상은 너의 편이니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놈”이라고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다.

면회시간 10분은 이렇게 아쉬움을 남기며 지나갔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지 열심히 말을 하고 있지만 이미 면회실 마이크는 꺼져 있었다. 이대한은 안타깝게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 진한 우정을 느낀다.

"그래! 난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놈이다"

이대한은 면회실 문을 박차듯 뛰쳐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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