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광호 한국인터넷뉴스 발행인
감수 : 최종웅 소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대한은 창밖을 바라본다. 진눈깨비가 내린다. 춘삼월이 지난지도 한참인데 엄동설한처럼 눈이 내린다.

그 모습이 자신의 복잡한 심정과 똑 같다고 생각한다. 눈인지 비인지 분간 못할 진눈깨비처럼 자신도 도저히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김혁수 검사는 겁을 먹는다. 이대한이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 같은 표정이다. 그의 머리에 신문기사들이 스쳐지나간다. 검사에게 조사받다가 자살한 사람의 이름이 하나둘 스친다. 아니, 그 반대다.

피의자한테 망신당한 검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검사의 가혹행위는 사회가 흥분하지만 검사의 망신은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 발 없는 소문이 되어 검찰청을 휘젓고 다닌다. 얼른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올해 또 미끄러질 수도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저만큼 걸려 있는 달력을 바라본다.

“왜 이러세요? 앉으세요. 앉아서 얘기 합시다.”

이대한은 김 검사가 이중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살모사처럼 독해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사람을 녹이는 재주가 있다고 느낀다. 이대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물끄러미 검사를 바라본다. 아깐 살모사처럼 독해 보이더니 지금은 코미디언 서영춘처럼 우스워 보인다. 이 판에 아예 검사의 인식을 바꿔놓고 말겠다는 듯 구속적부심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온다.

그날 이대한은 판사에게 김 검사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판사님! 신문은 하루도 빠짐없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9만 400여 호를 정상적으로 발행했습니다. 이런 신문을 사이비라고 매도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 건가요? 이렇게 거짓말을 해서 피의자를 구속시키려고 하는 검사는 아무 법에도 걸리지 않는 건가요?”

판사는 물끄러미 이대한을 바라봤다. 당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예상외로 강하게 나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대한의 반론은 계속되었다.

“자동차도 제 소유이며, 청주시청에 등록되었고, 세금도 꼬박꼬박 냈습니다. 물론 단 한 번도 보험을 들지 않고 다닌 적도 없습니다. 그런 차를 깡통차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죄입니까? ”

이대한은 물이 먹고 싶었다. 너무 급하게 말을 하느라고 숨이 가빴다. 그리고 목도 탔다. 물 한 컵을 쉬지 않고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물을 달라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한마디라도 더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전 결코 도주할 의도가 없는 사람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도망을 칩니까?. 판사님 전 억울하게 구속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인신이 구속되어 있어서 제 자신을 방어할 수가 없습니다.”

이대한은 언론이 검사 앞에선 종이 호랑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판사 앞에서는 그만도 못한 존재라는 자괴감을 느꼈다. 이대한의 말은 공손해졌다. 급기야 사정하는 조로 바뀌었다.

“검사는 막강한 수사권과 사법경찰관 지휘권 등으로 저를 조사하고 있는데 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변호사를 살 돈도 없습니다.”

이 말을 하고 국선변호인을 흘끗 돌아봤다. 차마 이 말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이 말을 해야만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설명할 수 있을 텐데 그 말을 못하다니….

이대한은 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말이 국선변호사이지 국선 변호인은 제게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구속적부심이 열리는 오늘 법정에서 잠깐 만날 수 있었을 뿐입니다. 단 5분 동안 날 만나고 판사에게 단 몇 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수십만 원의 보수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겁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돈이 많습니까? 사법부가 이렇게 썩어도 되는 겁니까?’

그러나 이 말은 판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검사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이대한의 가슴만 태웠을 뿐이다. 이대한은 마른기침을 몇 번 한 후 판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간곡한 부탁은 한참이나 더 계속되었다. 이때 백일섭처럼 생긴 판사가 말을 끊었다. 이대한은 판사가 들어올 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백일섭처럼 생긴 인상은 대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성격이다.

무슨 소리를 해도 다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판사의 목소리는 간단했다. 그렇지만 단호했다.

“그렇게 억울하면 재판을 받고 나가세요.”

이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떴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구속적부심 신청을 기각한다는 뜻이었다. 이대한은 판사를 난생 처음 보았다. 판사가 저런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검사가 자신을 깡통차를 타고 다니는 사이비 신문사 사장이라고 했고,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했으면, 검사에게 증거를 제시하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그게 재판 아닌가. 이렇게 할 바에는 뭐 하러 피의자를 나오라고 하고, 변호사를 입회시킨단 말인가. 이대한의 머리속엔 사법개혁이란 말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사법개혁이 왜 필요한 지를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줄은 미쳐 몰랐다.

판사는 단 한마디

"재판 받고 나가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판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이대한에게 국선변호인이 다가왔다.

“재수가 없었습니다.”

“네?”

이대한은 재판이 무슨 노름판도 아니고 재수에 따라 구속 불구속이 결정될 수 있느냐는 얼굴로 변호사를 바라봤다.

“마침 영장전담 판사가 휴가를 갔어요. 그래서 일반판사가 임시로 나온 거에요 저 판사는…”

국선 변호인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는 말았다. 눈치 빠른 이대한은 그게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 판사는 인정머리가 없는데다 전문지식도 없어서 자신이 책임질 일은 절대 하지 않아요. 만약 영장전담판사가 왔으면 자신의 책임 하에 소신 있는 판결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구속 불구속을 운칠기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대한은 그 후 혼자만 있으면 '운칠기삼' 이란 말을 중얼거린다. 그게 습관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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